왕이 된 남자
2019년 tvN에서 방영된 여진구, 이세영 주연의 16부작으로 이루어진 사극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영화 광해를 드라마로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허구를 섞었다고 하나, 이 드라마는 드라마의 내용이 완전한 허구라고 밝혔습니다. 잦은 변란과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의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중기, 임금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쌍둥이보다 더 닮은 광대를 궁에 들여놓으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에서 여진구는 1인 2역으로, 적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왕 ‘이헌’과 왕과 쏙 빼닮은 광대 ‘하선’ 역을 연기하였습니다. 이세영은 ‘이헌’과 ‘하선’이 동시에 사랑한 여인이자 중전 유소운 역을 연기하였습니다. ‘소운’의 지아비이자 왕인 ‘이헌’은 왕위를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불안감과 어린 이복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입니다. 암살 시도뿐만 아니라 점차 무언가에 중독되고 있으며 이 중독 증상이 본인의 불안한 정신 상태에 더해져 정신적 불안정을 호소합니다. ‘유소운’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이헌’과 짧지만 평온한 신혼생활을 누렸으나, ‘이헌’이 점점 성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광기를 띄는 그에게 공포를 느끼게 되고 그의 거친 행동 속에 담긴 애정을 거절하게 됩니다. 이후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헌’이 독살당하게 되며 지아비가 광대 ‘하선’으로 바뀝니다. 처음에는 ‘이헌’이 ‘하선’으로 바뀌었는지 모르다가 후에 사실을 눈치채고 분노하나 ‘하선’을 연모하는 마음을 인정하며 그의 편에 섭니다. 신하 ‘이규’는 왕에게 충성하는 도승지입니다. ‘이헌’을 향한 충심으로 광대인 ‘하선’을 궁에 들이며 일어나는 일들의 시작점입니다. 과거 그는 품성 좋은 세자 시절의 ‘이헌’을 보고 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이헌’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과 달라 그의 꿈은 멀어지게 됩니다. ‘이헌’ 대신 데려온 광대 ‘하선’에 성군의 자질이 보이자, 선택의 길에 서게 되고 결국 ‘이헌’을 독살합니다.
영화 광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개봉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병헌, 한효주, 류승룡 등이 출연하였으며,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습니다. 광해군이자 만담꾼 ‘하선’ 역은 1인 2역으로 이병헌이 연기하였습니다. 신하인 ‘허균’은 류승룡이, 중전 역은 한효주가 연기하였습니다. 광해군 8년 왕은 정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하여 그는 자기의 신하인 도승지 ‘허균’에게 지시하여 자신의 대역을 찾습니다. ‘허균’은 왕과 똑 닮은 만담꾼 ‘하선’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데려와 왕의 대역을 시키기 위해 교육합니다. 그 후 왕이 자리를 비우는 시기에 왕의 역할을 수행하게 합니다. 광해군 시기 당시 실존 인물을 빌려와 ‘승정원일기’에서 지워진 15일 동안의 빈 시간 사이에 광해군으로 위장한 대역이 조선을 다스렸다고 가정한 사실과 허구를 혼합한 영화입니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스러운 전개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호평을 끌어냈습니다. 이병헌의 뛰어난 연기가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결합하여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정치와 권력의 복잡성을 잘 묘사하여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12년 제49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시나리오상, 음악상, 미술상을 비롯하여 남우조연상, 남우주연상 등 역대 최다인 15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제4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분의 감독상과 작품상도 받으며 영화의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조선의 왕 광해군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왕으로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의 둘째 아들이며, 1575년 6월 4일 출생하여 1641년 8월 7일 승하하였습니다. 광해군은 1608년부터 1623년까지 왕위에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 세자에 책봉되었습니다. 그의 통치는 정치적 혼란과 외침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으며 조선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의 시기로 평가됩니다. 그가 즉위하기 전, 조정은 수많은 전쟁과 내분으로 어지러웠고, 왕실 내부의 권력 다툼도 심각했습니다. 그는 즉위 후,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정을 위해 여러 개혁을 단행했으며,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광해군은 즉위 이후 황폐해진 조선을 복구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대동법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치며 두 강대국 사이에서 조선의 생존을 도모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학문과 문화의 진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편찬하게 하여, 의학 지식을 집대성해서 의료 발전에 힘을 썼습니다. 광해군의 통치 기간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으며, 1623년 서인 세력이 주도하는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광해군은 폐위당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유배되었고 그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점차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은 불행한 왕으로 여겨지며 그의 업적은 상대적으로 잊혔다가 현대 역사학에서는 그의 통치가 조선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발전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음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광해군의 외교적 능력, 개혁 의지, 문화 발전에 대한 기여는 여전히 중요한 평가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광해군은 조선의 역사에서 복잡한 시대를 살아간 왕으로, 그의 통치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발전과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노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정책과 결정들은 그 시대의 정치적 혼란을 반영하고 있으며, 후대에 미친 영향은 여전히 중요한 역사적 논의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광해군의 역사는 단순한 왕의 이야기 이상으로, 권력, 정치,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